2025년을 강타한 K-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단지 감동적인 이야기만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게 아니다.
제주도 특유의 방언과 말투, 억양까지도 그대로 녹여내어 지역 언어가 가진 힘을 콘텐츠에 녹여낸 점이 이 작품만의 강력한 무기였다.
특히 글로벌 시청자들마저 자막을 보며 감동받게 만든 제주 방언의 어투는 단순한 언어적 표현을 넘어 정서와 문화까지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폭싹 속았수다’ 속 제주 방언이 어떻게 한류 콘텐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 요소로 작용했는지를 집중 분석해본다.
제주 방언의 생명력, 드라마 속에서 되살아나다
‘폭싹 속았수다’는 전편 대부분을 제주 방언으로 대사 처리한 드문 드라마다.
배우 아이유와 박보검을 비롯한 주요 출연진들이 표준어를 쓰지 않고, 실제 제주도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방언을 정직하게 구현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점은 단순히 색다른 설정이 아니라, 드라마의 전체 감정선과 서사를 형성하는 중요한 축이 된다.
제주 방언은 한국어 방언 중에서도 난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단어나 억양, 어미 등이 표준어와 크게 다르고, 문장 구조 자체도 매우 독립적이다.
그만큼 배우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도전이었지만,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제주 언어의 진정성과 정서를 살리기 위해 철저하게 연구하고 연습했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도 실제 제주도 방언 전문가들이 참여해 대사를 감수하고, 연습을 지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애순이 던지는 “맞수광”이나 “이서 불레게” 같은 말은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감정과 표정, 상황과 어우러지며 시청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관식이 무심히 던지는 “있으멍 마씀” 같은 말투도 그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언어의 힘이 드라마 전반에 스며들어, 시청자들은 제주 방언을 일종의 ‘감정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낯설지만 울림 있는 언어, 글로벌 시청자를 사로잡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제주 방언이 그대로 방영된다는 건 제작진에겐 큰 도전이었다.
번역이 쉽지 않은 지역 언어를 그대로 활용했을 때, 외국 시청자들의 몰입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하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그 우려를 완전히 뒤집는 성과를 이뤄냈다.
영어 자막을 통해 제주 방언을 번역하면서도, 제작진은 그 언어가 가진 뉘앙스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I was really surprised”로 번역되지 않고, 문화적 배경과 감정을 담은 ‘표현’으로 재해석되었다.
자막은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정서를 통역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글로벌 팬들은 SNS에서 “이 방언이 너무 따뜻하게 들린다”, “표현은 모르지만 감정은 이해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오히려 캐릭터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감정을 더 진하게 느끼게 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방언을 콘텐츠로 만드는 힘 – 지역 언어의 미래 가능성
‘폭싹 속았수다’가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지역 언어인 제주 방언을 하나의 ‘콘텐츠 자산’으로 만든 것이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방언은 주로 ‘사투리 캐릭터’나 개그 요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작품은 제주 방언을 작품의 정체성 그 자체로 정면에 세웠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국내에서도 점점 사용 인구가 줄어드는 제주 방언은 유네스코에서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한 상태다.
그러한 언어가 세계적인 플랫폼을 통해 수백만 시청자에게 노출되며,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는 건 단순한 문화 소비 이상의 가치다. 제주 방언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단순한 언어가 아닌, 감정·정체성·문화의 코드로서 세계 무대에 소개된 것이다.
더불어 이 성공은 다른 지역 방언이나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 지역마다 고유한 언어와 정서가 존재한다. 그것들을 무리하게 표준화하거나 생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언어와 감정을 살리는 방식은 앞으로의 K-콘텐츠가 지향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이 될 수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이라는 지역 언어를 콘텐츠의 중심에 세워, 감정과 문화까지 전달해낸 놀라운 작품이다.
낯설지만 울림 있는 말투, 감정을 담은 억양,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삶의 방식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제주 방언은 단지 대사가 아닌, 사람과 이야기, 그리고 감성 그 자체였다.
K-콘텐츠가 더욱 다양해지고 깊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지역성의 진심 어린 표현이 필요하다.
지금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그 언어의 감동을 직접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