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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딱,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곡이 흐를 때,
생각했어요.
“이건 그냥 드라마가 아니구나.”
‘폭싹 속았수다’는 분명히 조용한 드라마였는데,
묘하게 강했어요.
화려하지 않았지만,
깊었고,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오래 남았어요.
그러고 나서 며칠 뒤,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럴 줄 알았어.”
1. 보편적인데, 너무 정교했던 이야기
‘폭싹 속았수다’를 처음 접했을 때,
사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어요.
멜로? 시대극? 슬로우 템포?
과연 지금 시대에 먹힐까 싶었거든요.
근데 이 드라마는
보통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누구나 겪는 감정 –
사랑, 상실, 가족, 성장, 용서…
이걸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읽듯이 풀어내요.
애순이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던 어린 시절,
관식이 늘 뒤에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던 장면,
서울에서 외롭게 살던 청춘의 시간들,
그리고 다시 제주로 돌아와 자신을 마주보는 중년의 애순까지.
크게 소리치지 않지만,
정말 깊이 스며들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제주라는 공간 안에서,
한국의 시대 변화 안에서,
보편성과 지역성을 함께 안고 움직여요.
2. 인물을 ‘살게’ 만든 배우들의 연기
아이유와 박보검.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두 배우지만,
이번엔 그 기대 이상이었어요.
아이유는
애순이란 인물을
연기한 게 아니라
살아낸 것 같았어요.
10대의 불안과 분노,
20대의 혼란과 슬픔,
30대의 무력감,
그리고 40대의 수용.
그 정서를 한 사람 안에서
아주 천천히 변화시켜가는 모습은
그냥 ‘배역’이 아니라 삶이었어요.
그리고 박보검.
관식은 한마디로
‘기다림’과 ‘존중’의 상징이었어요.
말이 없고,
표현도 없지만,
눈빛 하나,
걸음 하나로 감정을 다 전하죠.
말없이 따뜻한 사람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진 건
박보검의 연기 덕분이에요.
3. 연출과 음악,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들
감정을 다루는 작품이
조금만 과하면 ‘멜로 클리셰’로 보이기 쉬워요.
그런데 ‘폭싹 속았수다’는 그렇지 않았어요.
김원석 감독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게 만들었어요.
카메라는 인물을 쫓기보단
그들의 공간을 먼저 보여주고,
여백을 남기면서 시청자에게 감정을 해석할 틈을 줘요.
그리고 음악.
OST는 말할 것도 없죠.
아이유의 <혼잣말>,
김필의 <바람 같은 너>,
정승환, 선우정아…
어느 곡 하나 가볍게 들리지 않아요.
특히 음악이 장면을 덮지 않고,
살며시 옆에 머무는 느낌.
그게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미술, 조명, 색감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디테일들.
이 모든 게 하나의 ‘감정 구조’를 만들었어요.
4. 그래서 전 세계가 반응한 거예요
글로벌 1위.
처음엔 좀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이렇게 조용한 작품이?’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전 세계 사람들이 원하던 감정이었어요.
빠르고, 크고, 강렬한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천천히, 작게, 조용히 다가오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어요.
슬픔, 그리움, 기다림, 성장, 포기, 회복.
이건 언어도, 문화도
넘어설 수 있는 감정이에요.
그래서 통했어요.
그래서 1위였어요.
마무리하며 – 조용히, 강하게 남는 작품
요즘엔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잖아요.
눈을 사로잡고, 귀를 때리는 이야기들.
그런 흐름 속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오히려
시청자의 감정을 믿은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그 믿음은 통했어요.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고,
긴 여운을 남겼고,
다 보고 난 뒤에도
다시 떠올리고 싶게 만들었어요.
당신도 그 감정에 닿고 싶다면
만약 아직 보지 않았다면,
지금 넷플릭스를 켜보세요.
‘폭싹 속았수다’는
눈물 짓게 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기억 속에 조용히 머무는 드라마예요.
그 속에
누군가의 인생이 있고,
당신의 감정이 있을지도 몰라요.